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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처 및 2차공유 자유 (알잘딱합시다)

개인 컨택 @dearDIEIN


왼쪽 플레이어에는 가볍게 듣기 좋은 곡들이 있습니다.

Arcaea 시라히메 스토리 백업

본인조차 모르는 소녀의 이름은 “시라히메”였다.

시라히메는 깨어났을 때 지니고 있던 왕관과 홀이 어떤 물건인지 단박에 눈치채고, 자신이 분명 고귀한 핏줄의 출생이리라 생각했다.

“머리를 조아려라!”

“···뭐?”

“···이 녀석도 아닌가.”

자신이 공주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시라히메가 팔짱을 끼고 눈을 홱 돌리고선 ‘옥좌’(식탁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눕혔다.

그런 시라히메를 “친구”가 당혹해하며 바라보았다.

시라히메 본인의 친구가 아니라, 유리 조각에 새겨진 기억의 주인 되는 사람의 친구였지만.



오늘은 네 개다.

시라히메가 출생의 비밀을 찾기 위해 뒤져본 유리 조각이 오늘은 네 개째다. 분명 어딘가에 그 진실이 숨어있을 것이다.

깨어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왕관과 홀의 의미, 자신의 말투와 세계관··· 시라히메는 이 “아르케아”의 세계에 자신이 나타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생각했다.

그 의혹을 제쳐두고서라도, 시라히메는 백색의 세계에 가득 찬 혼돈이 아닌 무언가 확실한 것을 바랐다. 조각이 비치어주는 기억의 세계처럼.

“잘 들으라, 하무···”

“내 이름은 하루야.”

“하토.” 시라히메가 팔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짐은 짐의 성이 있는 기억을 찾고 있노라. ‘성’이니라. 알겠느냐?”

“성? 뭐야, 지금 여왕님 놀이라도 해?”
시라히메는 손을 입술 위에 올리고 잠시 생각했다.

“여왕보다는 공주에 가깝지.” 그리고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대답했다.

“···어디 머리라도 부딪혔니, 안리?” 하루가 대답했다.

기분이 언짢아진 시라히메는 눈을 내리깔았다.
얼굴에 기분이 그대로 나타나는 성격이었다.

안리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안리가 아닌 것은 알았다.

곧 이 기억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딱히 나쁜 일은 아니었다. 재빨리 무너지는 편이 시간도 절약되니까.

하지만, 이번 기억에서도 아무 단서를 얻지 못했다는 점은 거슬렸다.

“기억이 뭐 어쨌다고?” 하루가 말했다. 기억의 침입자인 시라히메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네 개.

여태까지 총 쉰세 개.

시라히메는 조금이라도 느낌이 오는 기억이 있다면 반드시 들어가 보았다.

그녀는 하루의 멍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런 표정은 수없이 보아왔다.

4초가 지나자, 세상이 멈추었다.

금이 가는 소리가 나고, 곧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아르케아의 세계로 돌아왔다.
시라히메는 앉아있던 연석 앞에 높인 홀을 집어 들고 일어서서 잠시 휘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걸어갔다.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은 계속된다.

하지만 시라히메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진실을 찾는 것은 자신이 아닐 것이란 걸···





어떤 가설이든, 일단 세워보면 맞을 가능성도 있다.

아르케아의 세계에서 깨어난 수많은 소녀들이 결국 자신들의 과거를 찾았으니까.

하지만 시라히메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른 소녀들이 그랬듯, 그녀 또한 이 유리의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은 자기뿐이라 믿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뭔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시라히메는 자신이 처한 이 곤경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이 세계에 나 혼자뿐이라면, 나는 추방당한 왕족인 걸까? (아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훌륭한 지도자였겠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날 반란이 일어난 거야! (안 일어났다) 백성들이 여왕, 공주, 그리고 국가에 반기를 들고일어나 내 기억을 모두 지워버린 거야! (스케일이 너무 크다) 마법으로!

왕관과 홀을 지닌 소녀는, 마법을 믿었다.
하지만 하나는 인정해야 했다. 이 백색의 세계가 마법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단 말인가?

소녀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기묘했지만, 이 세계 그 자체는 더욱 기묘한 것이었다. 그 어떤 기억에서도, 아르케아의 세계처럼 유리 조각이 날아다니는 세계는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유리 조각에 비치는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니, 이게 마법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기에 시라히메는, 자신이 마법의 세계에서 왔음을 확신했다.

‘마법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왕족’··· 틀린 가설이다. 하지만 그것이 시라히메가 현재 가장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는 가설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특별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존경받아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멋진’ 장소에 ‘멋진’ 기억이 모여있는 게 아닐까?” 무채색의 세계를 바라보며 시라히메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탑을 찾아보자!”
그렇게 시라히메는 전진했다.

그렇다.

그녀는 돌머리였다.


시라히메는 또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녀는 매번 하듯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귀한 혈통을 선언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시라히메는 아주 격렬한 수치심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온 사방으로 기억의 세계가 무너지는 와중, 그녀의 볼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다시 유리의 세계로 돌아온 시라히메는 손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질끈 감았다.

손 사이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으으으으··· 뭐냐고, 이 기분은···”

···시라히메가 말했다.

“내 성은 어디 있는 건데!?”

계속해서 말했다.

“내 백성들은!? 동포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발을 구르며 주먹을 쥐고 이를 깨물었다.

“한 번 더!”

시라히메는 그렇게 소리 지르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억으로 뛰어들었다. 무슨 기억인지는 몰랐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그 식당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짓던 표정을 잊고 싶었다.
세계가 소용돌이치며 형태를 갖추었다. 밤하늘이 나무에 가려져 달이 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숲 속의 빈터에 그녀는 앉아있었다. 등 뒤로 모닥불이 타닥거리는 소리를 냈다.

“보여?” 어린아이가 말했다.

이 기억 속에서, 이 아이는 시라히메의 “동생”이었다. 꼬마 소녀를 바라보며 시라히메는 생각했다.

이 기억의 주인인 꼬마의 언니는 어떤 별자리를 찾고 있었다.

“아니, 안 보이네.” 백발의 소녀가 말했다.

“계속 찾아보자.” 동생이 말했다.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시라히메는 가까이 다가가 그 물건을 자세히 살폈다.

옆면에 버튼이 달린 화면이었다. 화면에서는 영화, 아니, 애니메이션이 흐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시라히메는 동생의 옆에 앉아 함께 화면을 바라보았다.

다른 아르케아에서 보았던, 여느 창작물들과 비슷했다.
특별한 힘을 지닌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괴물과 싸우는 내용의, 특출 난 것 없는 만화였다.

“···이거 충전한 거 맞지?” 시라히메가 기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물어봤잖아.” 동생이 대답했다.

“···그래서 충전했다고?”

“했어!”

“다행이네···”

진심을 담아 속삭였다. 정말로 진심을 담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왕족은 만화 같은 걸 보면 안 된다. 왕족은 정치가이자 지배자이며, 백성을 지도하는 존재이다.

시라히메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 말없이 앉아 집중하며 만화를 보는 것이, 그 무엇보다 훨씬 친숙하게 느껴졌다.

시라히메는 동생의 어깨에 자기 어깨를 기댔다.
동생도 반대로 자신에게 기대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편안한 기분이었다.

아까 전까지 몸을 지배하던 수치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올라오는 분노 속에서 그녀는 생각했다.

인생이란 때때로 아주 끔찍한 것이라고.
유리 조각 안에서 목격한 끔찍한 일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인생은 끔찍한 것이었다.

좌절감, 탈력감,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무력감···

그게 인생이었다.

이 유리 감옥에 갇히기 전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고독한 옥좌에 앉은 고독한 지배자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 이 기억이, 그녀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랬다면, 인생도 조금은 괜찮지 않았을까.

시라히메의 “동생”이 조그만 담요를 들고 와 자신과 “언니”의 어깨에 둘렀다.

그녀는 동생을 바라보고서 조그맣게 “고마워.”라고 속삭였다.

그렇게, 기억이 서서히 사라질 때까지, 시라히메는 말없이 만화를 보았다.



그때부터, 시라히메의 목적의식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숲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만화를 보며 몇 시간이고 녹였던 기억이··· 그녀의 열정도 완전히 녹여버린 것이다.

그녀에겐 성은 고사하고 집이라 부를 곳도 없었다. 성이나 집을 찾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기억에 불과할 것이다.

버려지고, 잊히고, 단명할 기억, 그것이 진실이었다.

앞으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결말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끝이 없는, 합리적이지 못한 여정일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녀가 걸어갈 길이 텅 비어버렸다는 것이다.
“가슴이 아파···” 시라히메가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영원히 계속되는 햇빛을 바라보았다. 입은 굳게 닫혀있었고, 눈은 촉촉했다.

설령 그녀가 머나먼 왕국의 공주, 추방당해 버린 위대한 지배자, 왕족이라 할지라도···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았으며, 완벽한 인간은 없었다.
소녀는 조용히, 자신의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을 곱씹었다.
보이지 않는 태양 아래에서, 눈을 감은 시라히메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꼈다.

소녀는 훌쩍였다.

햇빛을 머금은 눈물방울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 방울이 땅에 닿기 직전에, 머금고 있던 빛이 사라졌다.

하늘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시라히메의 얼굴을 비추던 아르케아의 햇빛이 마치 썰물처럼 사라져 갔다. 그녀가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자, 그림자와 밤이 세상에 내려앉고 있었다.

“엑···?”

시라히메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찢어져 있었고, 붉은 혜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응···!?”

혜성은 1분 정도 낙하하더니, 시라히메의 앞에 착지하며 바람을 일으켰다. 모래와 함께 시라히메의 양갈래 머리가 휘날렸다.

어안이 벙벙한 시라히메는 입을 벌리고, 자신의 앞에 떨어진 “혜성”을 바라보았다.

그 “혜성”은 망가진 의자 더미 위에 앉아 머리를 흔들어 모래를 털어냈다. 머리를···?

“혜성”은 여자 아이였다.
그녀는 아주 크게 눈을 떴다. 곧, 크게 뜬 눈만큼이나 커다란 미소가 그 얼굴에 번졌다.

하늘로 날아올랐던 적색의 소녀.

그녀의 이름은 코우였다.



“만나서 반가워!”

생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코우가 인사했다. 시라히메는 그 자리에 굳어서 얼굴에 핏기가 빠졌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코우는 의자 더미에서 내려와 거의 넘어질 정도로 강하게 시라히메의 품에 뛰어들었다.

이에 자칭 왕족의 입에서 전혀 왕족답지 못한 “우와악?!”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너 진짜 사람 맞지?! 그렇지?” 코우는 시라히메를 껴안은 팔을 풀고서 그녀의 얼굴, 귀, 머리카락, 옆구리를 마구 만졌다.

시라히메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코우는 시라히메의 새빨간 볼을 쭈욱 잡아당기며 웃었다.

“이거 기억 아니지?” 코우가 물었다.

“나 사람 맞아!”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공주”가 대답했다.
“그렇구나! 너 자기 이름은 알고 있니?” 코우가 물었다.

“나는 내 이름 모르거든. 아, 이제는 기억났을지도?!”

코우는 그렇게 말하며 희망에 찬 표정으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가,

“으응··· 아니네··· 아직 모르겠네···”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자, 잠깐만···! 좀 천천히···” 시라히메가 애원하듯 말했다.

“그, 그··· 너, 그 뭐냐··· 너, 다, 다친 덴 없는 거냐?”

더듬거리며 질문을 하는 시라히메를 보며 코우는 웃었다. 질문보다는 대답을 요구하는 명령에 가까운 억양이었다.

“없어, 괜찮아.” 코우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시라히메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뭐, 그렇긴 한···데···” 코우가 하늘을 바라보더니 말을 흐렸다. 허리에 한 손을 얹고, 다른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서, 시라히메를 보며 소리쳤다.

“밤이네!”

“그걸 이제야 눈치챘어?!”
“떨어지면서 뒤는 안 돌아봤거든.” 코우가 두 손을 모두 허리에 얹고서 말했다.

“하늘에서 뭘 하고 있던 거야?”

“기억들을 보고 있었어.”

“너도 기억을 볼 수 있어?” 시라히메가 묻자, 코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하늘도 날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니고···” 이번엔 고개를 저으며 코우가 대답했다. “물건을 공중에 띄울 수는 있어.”

그렇게 말하며 코우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찬장을 향해 손가락을 휘두르자, 찬장이 그녀의 방향으로 날아왔다.

“넌 못 해?”

시라히메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양갈래 머리가 앞뒤로 흔들리는 모습에 코우는 크게 웃었다.

시라히메는 가슴에 손을 얹고,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인간’이니까.”
아르케아의 세계에서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나의 운명, 또는 두 운명의 결합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뒤틀리곤 했다.

하지만, 이 두 소녀의 만남은 순수한 우연이었다.

둘은 대화를 나누었다. 유리 조각, 목적, 그리고 하늘에 대해서. 그 뒤로는 실험이 뒤따랐다.

코우는 마법으로 시라히메를 들어 올릴 수 있는가? 시라히메는 코우의 마법을 배울 수 있는가?

전자는 성공이었고, 후자는 실패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둘은 자신들 외에도 이 세계에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두 소녀는 저 멀리 사라져 가는 햇빛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어쩌면, 자신들 외에도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운명에 묶이지 않은 두 소녀는, 함께 걸어 나갔다.



시라히메를 만난 지 몇 주, 아니면 몇 개월이 지났는지, 코우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밤하늘 아래에서, 두 소녀는 어둠의 장막에 덮인 폐허를 헤쳐왔다. 코우가 앞장서면, 시라히메는 비틀거리며 따라갔다.

시라히메는 화사하게 웃는 코우의 등에 손을 얹고 따라갔다. 쉽사리 부끄러워하는 “공주님”의 성격은 기억 바깥의 현실 세계에서도 발현되었다.

넘어지거나 말을 더듬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코우는 이 자칭 왕족이 덜덜 떠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시라히메는 말을 할 때나 행동할 때나, 떨림이 확실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이 기나긴 여정이 두 사람을 묶어주었다.

하지만, 이 인연도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여행을 시작하고 얼마쯤 지났을까. 두 소녀는 낮과 밤의 경계선에 도달했다.

구름은 조각나있고 아직 별들이 떠 있었지만, 아침의 햇빛이 하늘에 분명히 스며들어있었다.

소녀들은 말없이 감동에 가득 찬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감탄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곳은, 낮과 밤이 나누어지는 곳이니까.
“예쁘다···” 시라히메가 속삭였다.

“그러게.” 코우가 동의했다.

밤의 별들은 연보랏빛으로 반짝였다. 낮의 하늘은 새하얀 금빛이었다.

그 두 하늘이 만나는 곳에서는 기억의 조각들이 프리즘으로 만들어진 뱀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치 서툴게 넣은 봉제선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 광경을 보고 있자, 마치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세계의 정체를, 이 세계가 생겨난 이유를.

코우는 먼저 시선을 내렸다. 시라히메는 여전히 하늘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 어떡할까? 결국 사람은 한 명도 못 찾았네.” 코우가 물었다.

“그러게···” 시라히메가 대답했다.

“계속 찾아볼까?”
시라히메도 시선을 내렸다. 소녀들의 앞에는 밤과 빛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아르케아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시라히메는 코우를 바라보고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저 경계선을 따라가 사람을 찾아보겠어. 너는 하늘로 다시 돌아가서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찾아봐."
코우는 눈썹을 추켜올렸다.

이 기나긴 여정에서, 코우는 시라히메가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고압적이고 우아하지만, 그건 모두 유약한 마음을 숨기기 위한 연기에 불과한, 서투른 사람.

“···명령하는 거야?” 놀란 코우가 물었다.

“물론.” 시라히메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 왕관이 보이지 않느냐? 짐은 왕족이니라!”

“잘 보입니다, 전하.” 코우가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시라히메는 다시 시선을 낮추어, 앞에 펼쳐진 유리의 산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건 장난이었고··· 갈라지자는 말은 진심이야.”

시라히메는 그렇게 말하며 코우와 눈을 맞추었다.

“하늘로 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줘.”

잠시 침묵의 순간이 지난 후, 코우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발밑의 콘크리트를 커다란 원판 모양으로 떼어내 그 위에 올라탔다.

“그럼, 나는 밤하늘로 올라갈게.” 코우가 말했다.

“만날 수 있을 때 다시 만나자!”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응, 반드시.”

시라히메도 웃음을 지어주며 대답했다. 곧 코우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저 백발의 소녀에게 또 한 번 놀라움을 느꼈다.

코우는 분명 다시 만나자는 그 말을 굳게 믿었다. 그 믿음에, 코우의 얼굴은 이윽고 다시 빛을 되찾았다.
코우는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을 향해 날아갔다. 시라히메는 앞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왕국을 되찾겠다는 야망은 잊어버렸다.

이 세계에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세계가 얼마나 광활할지라도, 언젠가 다른 사람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왕관과 홀은 왕족의 상징이다. 그리고 왕족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안식처와 같은 존재이다.

어쩌면 시라히메의 혈통은 전혀 고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는 확실했다. 자주 불평하고, 곧잘 흔들리고, 유약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시라히메의 영혼은, 고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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